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문단 편집) == 가톨릭과 지동설의 관계 == 그의 당대에 [[가톨릭]]계는 지동설을 별로 탄압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직접 그의 저작들이 탄압당한 정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을 규탄한 쪽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맹신하고 있던 속세의 교수들이었고,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출간을 40년이나 미룬 것도 강단 교수들의 비난이 두려워했을 뿐 가톨릭계는 지동설을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였었다는 말이 있지만 애초에 종교와 과학이 완전히 분리된 시대도 아니고 대학 교수 중 상당수가 성직자였기에 의미없는 구분이다. 그의 학설에 매료된 가톨릭계 인사들의 아주 간곡한 부탁에 의해 출판이 이루어진 것은 가톨릭 인사중에도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인사는 존재했다 정도로 인식되어야 할 문제이지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코페르니쿠스를 탄압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침소봉대에 가깝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는 1616년에 가톨릭 금서 목록에 들어갔으며, 4년 뒤에는 아홉 문장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재출판 가능하다는 결정이 나왔다. 한 학술지[*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church-history/article/galileos-nontrial-1616-pretrial-16321633-and-trial-may-10-1633-a-review-of-procedure-featuring-routine-violations-of-the-forum-of-conscience/F5BB9632FA3F4C34B33C119A401EB3BC|Galileo's Non-Trial (1616), Pre-Trial (1632–1633), and Trial (May 10, 1633): A Review of Procedure, Featuring Routine Violations of the Forum of Conscience]]]는 가톨릭 주교들이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이단이라고 선고했으며,[* "This pronouncement shows that the cardinal inquisitors accepted the determination of the consultors that heliocentrism was a heresy." The Sentence and abjuration 파트의 12번째 문단]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는 내용을 정정하고서도 여전히 금서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다고[* "This seems to indicate that the cardinal inquisitors considered Copernicus's book to be still prohibited, even though the required corrections had been issued in 1620." Galileo's non-trial of 1616 파트의 4번째 문단] 보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